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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가구의 역사

후광( 구, 군주) 2007. 4. 3. 20:51

『가구란 무엇인가』

(1) 가구의 의미

인류가 살아가는데 있어 가구를 사용한다는 것은 원시적이고 동물적인 습성에서 벗어나 문명생활을 한다는 의미입니다. 사실 가구가 인간 존재에 꼭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원시시대에는 가구란 개념조차 없었으며, 지금도 어떤 문화권에선 가구 없이도 무리 없이 생활을 영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생활의 기능과 편리성 추구라는 측면에서 가구의 의미는 우리생활을 반영하는 도구임은 분명합니다. 따라서, 가구는 인간생활에 있어서 약간 고차원적인 위치를 차지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2) 가구의 개념

1. 필요에 의해 생겼다는 기능적인 의미

2. 가구가 사회, 경제적인 지위를 나타내는 도구의 역할의 의미로서 이것은 계급사회에서 더욱 두드러지는 개념으로 편리성이나 안락성 보다 전시적인 효과를 중요시한다.

3. 가구는 그 시대적 문화 와 생활을 표현하는 거울의 개념으로 가구는 매일매일 인간에게 매우 헌신적인 하인이며 인간을 주빈으로 만들거나 배우로만들 수 있는 생활 속에 존재하 고 있다.


(3) 가구의 어원

가구의 어원을 보면 furniture(영어), meuble(블어), mobel(독어) 로, 영어의 퍼니처는 프랑스어 furniture(지급품, 공급품)에서 변한 말이며, 독일어의 뫼벨은 프랑스의 뫼블에서 나왔습니다. mouble은 라틴어moreo(움직이다)가 어원입니다. 가구의 말뜻은 고정적인 가옥에 대해서 움직일 수 있는 도구 또는 방을 장비하는 (furnish)것으로 풀이됩니다.


(4) 가구의 기능

가구의 기본적 기능은 인간 활동을 보존하는 것으로 건축 (특히 주택의 경우) 의 기능은 가구에 의해 비로소 완전히 달성되는 데 건축물보다도 인간에게 직접적으로 관여하며 건축물과 인간 활동과의 접촉점에 위치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움직일 수 있는 것'이 가구의 중요한 특성 가운데 하나인 것도 여기에 연유합니다. 일반적으로 가구는

 ① 직접적으로 사람을 지탱해주는 그룹(의자류, 침대류)

 ② 작업의 보조역할을 하는 그룹(책상, 식탁, 공작대 등)

 ③ 물품의 정리, 간수를 담당하는 그룹(옷장, 책장, 찬장) 등으로 구분됩니다.

①,②는 인체와 그 크기 및 동작 치수가 가장 많이 관계되며 ③은안에 넣을 물품의 종류, 수량, 수납방식 등이 디자인 규정의 주요소가 되는데 인체와의 관계가 중요함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생활이 윤택해지고 생활수준이 향상될수록 가구는 우리의 생활에서 중요한 위상을 차지하게 됩니다. 과거에는 수납공간 위주의 기능적인 측면에 중점을 두었다면, 현대로 올수록 기능뿐 아니라 장식적인 측면이 많이 부각되었고, 자신의 Life style을 반영하는 차원으로까지 승화하게 되었습니다.




『가구의 기원과 발생 요인』

인류역사상 가구가 언제부터 존재했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정착생활과 함께 필요에 의해 자연적으로 발생하였다고 추측됩니다. 오늘날과 같은 개념의 가구가 최초로 제작된 것은 스코틀랜드, 오크니제도(Orkney Islands)의 스크라 브래(Skra Brae)에서 발굴된 신석기시대의 주거지에 있던 의자와 침대가 통합된 가구를 최초의 것으로 꼽을 수 있습니다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가구가 제작, 실용화된 것은 고대 이집트의 전성기인 신왕국의 수도, 테베(Thebes)의 비지에르 렉마이어(Vizier Rekhmire)의 고분에서 발견된 노예들이 가구를 제작하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고대국가의 형성 이후로 생각됩니다.


『가구의 발생 요인과 유래』


(1) 인간의 신체적 안락과 편리를 위해서 가구를 제작하였다.

인간은 직립하며 상체를 두 다리로 떠받치고 있기 때문에 쉽게 피로를 느끼게 됩니다. 따라서 자연히 앉거나 드러눕고 싶은 욕망을 갖게 되어 오늘날과 같은 의자나 침대 또는 평상을 만들어 사용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런 안락과 편리에 따른 욕망이 가구를 제작하게 하였을 거란 이론입니다.


(2) 농경생활로 인해 일정지역에 정착하게 됨에 따라 의식주에 여러 종류의 도구와 기구을 마련하게 되었다.

예를들어 음식을 보관할 그릇들을 얹어 놓을 선반에서부터 식탁 및 찬장, 의복 등을 보 관할 옷장류와 상자, 연장류를 보관할 함, 베를 짜기 위한 베틀과 의자 등등 이러한 문화 의 발전과 더불어 필요에 의해 점진적으로 가구가 발달하게 되었을 것이라는 이론입니다.


(3) 특별한 가구의 범주로는 종교적인 의식이나 상징적인 차원에서 제작되었다는 점이다.

왕권을 과시하거나 신성한 절대자의 힘을 상징적으로 부각시키려는 사회일수록 이러한 의미는 강조된 반면, 일상생활의 편리함이나 안락함과 관련된 가구의 기능적인 의미는 상대적으로 퇴색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예는 이집트 문명에 있어서 왕권을 상징하는 의자와 중세의 제식용 가구 및 동양의 사찰이나 사당에서 사용하는 제기에서 엿볼 수 있습니다다. 특히 동양에서는 이러한 제기에서 파생된 양식들이 일반인들이 사용하는 가구에도 적용된 것이 많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가구는 오늘날까지도 또 다른 의미에서 인간의 계층적 권위를 상징하며 사회적, 경제적 지위를 나타내는 척도의 하나로 이용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가구의 상징성은 예술성과 결합하여 가구의 양식 또는 디자인의 특징이 되기도 합니다.




『가구 형성과 발달』

인간이 농경생활과 같은 정착사회를 형성하기 시작한 이후부터 가구는 의식주와 밀접한 연관성을 지닌 생활용품으로서 인간의 미적, 기능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생활도구로서 발달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러한 가구의 형성과 발달과정은 좁은 의미로는 계급적 분화가 일어난 역사 이후의 시대부터 당시의 문화를 반영하는 조형물로서 건축양식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넓은 의미로는 각 인종과 민족의 독특한 정서와 미학을 내재하고 있는 사상과 종교의 역사적 전통성에 근원을 두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와같은 가구의 양식은 어느 한 민족의 문화적 요인으로서만 성립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민족의 문화적 요인을 흡수 융화시켜 그 민족 특유의 미의식을 내포한 조형미로 창조 발전시킨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가구의 형성, 발전은 역사적, 문화적 요인 외에도 지리적인 영향과 기후조건, 천연자원 등 자연환경의 영향을 복합적으로 받고 있습니다. 가구는 시대별, 지역별, 계층별 특성에 따라 각 시대의 문화와 생활양식을 그대로 반영하는 조형예술품의 하나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


(1) 자연환경의 영향

가구의 발달에 있어서 자연 환경은 가구의 지역적 특성을 형성하는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합니다. 기온과 습도, 강수량 그리고 지세와 지질은 가구의 중요한 재료로 사용되어온 나무의 생장 및 수종의 분포에 직접적인 요인으로 작용할 뿐 아니라 주택의 공간구조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와 같이 자연환경의 영향으로 인하여 가구의 지역적 분포상태는 나무의 생장조건에 적절한 온대지방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한대지방과 열대지방에서의 가구발달은 미약합니다. 가구의 발달은 사계절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다양한 종류의 나무가 분포한 온대 지역과 풍부한 침엽수로 형성된 냉대기후 지역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특히, 온대지방에서는 인간의 의식주가 사계절에 따라 변모하므로 이에 따라 용기, 식량, 의복의 관리 및 사용을 위한 가구의 사용은 필연적인 것이었으며 이러한 가구사용의 필연성은 다양한 수종으로 형성된 산림자원으로 충족될 수 있었습니다.


(2) 주거의 영향

실내의 공간구조는 가구와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주택의 실내공간구조가 가구의 형태 및 그에 따른 양식의 형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쳐왔음은 많은 실례를 통해서 엿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실내구조가 가구에 미친 영향을 알기 위해서는 동. 서양에 있어서의 실내공간을 해석하는 개념의 차이와 역사적으로 동양과 서양의 건축에 사용된 재료와 가구의 특성을 서로 비교할 필요가 있습니다. 현대의 동양은 서구화 산업화의 과정을 거쳐 성장한 세대들의 실내공간에 대한 의식구조는 보다 간소하고 실용적이며 개성있는 실내공간을 선호하는 경향을 보이며 이러한 변화는 실내가구에도 점차 큰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1. 공간구조

고정된 위치에서 고정된 기능을 부여하는 불변공간이 서양의 실내공간 구조라 한다면 한국인의 空間觀이 보자기를 싸듯, 이부자리나 옷을 개듯 공간을 극소화했다가 재구성하고 다시 극소화하는 신축성 위에 형성된 유동적인 가변공간이 동양의 공간구조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은 동양과 서양의 주거공간 상이점이 가구의 전개 및 발달에 커다란 차이를 가져오게 된 원인이 된다.


2. 가구와 주거공간의 연관성

가구와 주거공간의 연관성을 살펴보면 서양의 주택에서는 가구가 단위 공간적인 각 방의 특징에 알맞은 용도와 기능을 지니고 사용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침실에는 침대, 식당에는 식탁과 의자, 응접실에는 탁자와 소파를 구비하고 있습니다.

반면 동양의 주거공간은 서양과 같이 세분화되어 있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한국과 일본에는 이부자리를 갬으로서 침실공간이 거실공간으로 바뀌며 밥상을 치움으로서 식당공간이 거실공간이 되고, 거실공간에 방석만 깔면 접객하는 응접공간이 됩니다. 다만 예외로서 중국은 거주공간이 서양과 유사하나 서양과 같이 엄격하게 분리된 공간은 아닙니다. 따라서 동양에서는 이부자리 및 의복을 개고 접어서 넣어두는 평면적인 수납을 기초로 한 반닫이나 장롱 등의 수납가구의 발달과 더불어 식사 때 이동이 용이한 식탁, 小盤 등 가변성이 있는 가구가 발달하였습니다.

반면에 서양에서는 주거공간에 고정된 침대, 식탁, 의자 등이 실내공간을 점유하고 있고 또한 대형화 된 실내공간에 보조를 맞추어 탁자나 의자 및 입체수납에 기초한 장롱의 대형화를 초래하였습니다.


3. 서양 - 서양의 실내공간에 있어서 가구의 배치는 동양과는 달리 시대에 따라 변천하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집트

그리스

로마

르네상스

바로크

로코코

신고전주의 이후

19C말

20C말

  

4. 동양 - 동양의 실내공간에서의 가구배치는 역사적으로 그 변천과정이 매우 완만하게 진행되었습니다. 이러한 경향은 역사적으로 주택의 구조가 거의 변화되지 않았다는 점과 유교적인 규범과 전통 위에 성립한 의식구조에서 영향받은 바가 큽니다.

중국

한국

일본



(3) 종교사상과 영향

종교와 사상의 영향이 가구의 형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 것은 역사 이후의 시대이나 그 기원은 선사시대의 종교적 조형미술에서 시작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1. 원시종교

수렵 및 채취생활과 깊은 관련을 가진 샤머니즘(shamanism)과 토테미즘(totemism)의 마술적 수렵의식을 토대로 해서 그에 따른 조형미술을 창조하였습니다. 특히 토템의 동물미술은 원시인들의 신앙 및 생활배경과 불가분의 관계를 가질 뿐 아니라 구체적인 상징성을 통하여 그들의 세계관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2. 구석기시대

사실적인 동물묘사와 같은 자연주의 경향


3. 신석기시대

추상화, 상징화된 표현의 형식주의가 등장, 원시시대 미술은 미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종교적 의의도 지니는 것입니다. 또한 신석기시대의 조형미술에 있어서 형식주의의 등장은 종교에 있어서 구석기 시대의 일원론적 세계관이 애니미즘의 이원론적 세계관에 의해 대치되었음을 의미합니다.


4. 고대구가의 성립

원시종교의 조형미술은 고대국가의 건국신화나 시조신화 등과 결합하여, 종교로서의 형식을 갖춘 역사 이후의 시대로 계승되어 인간의 정신세계를 구체적으로 표현시킨, 즉 신을 표현하는 종교적 조형미술로서 본격적인 발전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종교적 조형양식이 고대국가의 성립 이후 신성한 힘이나 권위의 상징으로 이용된 고대가구의 성격형성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게 된 것은 필연적인 결과였습니다.


5. 서양 - 사상의 흐름에서 보면 서양에서는 가구의 조형에 있어서 그 영향이 르네상스시대 이전까지는 종교와 분리되지 않고 종속적인 상태로 작용하였습니다. 그러나 르네상스 시대 이후에는 가구에 있어서 종교의 영향이 감소되고 그대신 사상의 영향이 확대되었으며 특히 20세기 이후에는 가구양식에 대한 독자적인 사상 또는 개념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원시종교

구석기시대

신석기시대

이집트

그리스 로마

중세

르네상스

17C~18C전반

18C후반

19C

데스틸

바우하우스

 

스칸디나비아

포스트모더니즘

멤피스가구

 



6. 동양

중국

한국

일본


(4) 사상의 영향


1. 사상의 흐름

사상의 흐름에서 보면 서양에서는 가구의 조형에 있어서 그 영향이 르네상스시대 이전까지는 종교와 분리되지 않고 종속적인 상태로 작용하였습니다. 그러나 르네상스 시대 이후에는 가구에 있어서 종교의 영향이 감소되고 그대신 사상의 영향이 확대되었으며 특히 20세기 이후에는 가구양식에 대한 독자적인 사상 또는 개념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동양에서는 사상이 역사시대 이후부터 근세에 이러기까지 거의 전시대를 통하여 종교와 분리할 수 없는 결합된 상태로 가구에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따라서 가구 형성과 발달에 있어서 종교와 사상의 영향은 동양과 서양 모두 예외없이 종교에서 시작되고 있습니다.


2. 이집트

이집트에서는 우주의 질서와 인간세계를 주재하는 많은 신들이 동물의 형상으로 표현되었습니다. 이러한 동물들은 대부분 半人半獸(반인반수)의 모습으로 조각이나 벽화 등에 나타나 있으며 가구에도 그 모습이 적절하게 수정되고 적용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가구에 적용된 신화적인 동물로 미루어보아 그 당시의 가구가 신성한 물건으로 취급되었으며 지배계급에 국한되어 사용되었음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3. 그리스와 로마

그리스와 로마 시대의 가구도 신화적인 동식물이 가구의 표면이나 다리 부분 혹은 의자의 등받이 부분에 문양이나 조각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가구는 종교적인 상징물로서의 의미가 많이 약화되었으며 오히려 인간의 도구로서의 의미가 강조되었습니다.


4. 중세

중세에는 모든 예술이 기독교 신앙의 범위 안에서 제작되었으므로 예술적인 개성은 종교적 규범이나 제약으로 크게 위축되었습니다. 따라서 건축은 교회중심의 건축으로 발달하게 되었으며 이러한 건축의 실내에서 사용된 가구도 종교적인 특성에 맞도록 제작되었습니다.

특히 고딕 시대의 가구는 기독교의 영향을 받은 건축의 특성을 그대로 적용하고 있습니다.

또한 가구의 종류도 종교적 양식을 위한 크레덴스(credence), 사제용의자 등을 중심으로 발달하였습니다. 한편 이 시대의 스페인 지방은 회교동의 지배하에 있었으므로 회교 문화를 받은 무데하르(mudejar)풍의 가구가 발달하였습니다.


5. 르네상스

르네상스 시대에는 인간성 회복에 그 본질을 둔 인본주의 사상이 전개됩니다. 이러한 인본주의 사상은 예술에 있어서 종교의 사상이 분리된 최초의 예입니다. 따라서 예술상으로는 개성이 중시되었고 그에 따라 가구의 조형예술도 서서히 발전하게 된니다.


6. 17세기에서 18세기 전반

17세기에는 정치적 목적을 수행하기 위한 절대주의 사상에 입각한 바로크 가구가 유행하게 되어 18세기에는 바로크 시대의 절대주의에 반발하여 계몽주의 사상이 전개되었습니다. 이는 곧 조형예술에 있어서 17세기를 지배하여 온 바로크 양식에 대한 로코코 양식의 출현을 의미하는 것인 동시에 기독교의 구교가 발전시킨 바로크에 반대한 신교의 로코코를 뜻하는 것입니다.


7. 18세기 후반

18세기 후반에는 자연으로의 회귀를 주장한 루소(Rousseau)의사상과 도덕적인 개선의 영향아래 경솔하고 부패한 로코코양식에 대한 반동으로 신고전주의가 일어나고 가구의 조형개념은 귀족중심에서 서민중심으로 점차 바뀌어가면서 가구제작에 있어서 제작자의 개성적인 표현이 중요하게 되는 시대를 맞이하게 됩니다. 따라서 가구에 있어서 종교의 영향은 세이커 교도의 가구를 마지막으로 거의 사라지게 되며, 이후의 시대는 근대화의 개념이나 가구자체의 형과 기능에 관한 디자인 사상이 가구에 적용되기 시작하였습니다.


8. 19세기


19세기에는 대량생산에 의해 나타난 저질의 가구와 조형개념의 진공상태를 극복하기 위한 일련의 노력으로 영국에서는 미술과 공예운동의 미학운동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운동들은 상징주의적 미학과 패턴(pattern)의 미학을 받아들인 아르 누보로 이어졌습니다. 이와 같은 상징주의 및 패턴의 미학과 동시에 물체의 기능이 그 형태에 영향을 미친다는 기능주의적 미학을 포용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아르누보는 획기적인 조형 예술이었습니다.


9. 세제션 과 독일공작연맹

이후 시세션 운동과 독일공작연맹은 기능주의를 강조하게 되어 상징주의 또는 장식주의는 퇴색하게 됩니다.


10. 데 스틸

한편 네들란드에서 일어난 데 스틸 운동은 정신적인 표현이 순수하면 미술도 순결한 심미학의 표현이 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미술에 명료와 질서의 표현을 요구하였습니다. 즉 데 스틸 운동이 시도한 것은 회화세계에서 발전시킨 신조형주의에 근거한 명료하며 기하학적인 공간구성에 특징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11. 바우하우스

이와 같은 기능주의의 이념과 신조형주의의 이념은 바우하우스의 예술이 곧 디자인이며 디자인은 대량생산을 위한 원형을 창조하는 것이라는 교육이념에 흡수되어 새로운 조형이론으로서 확립되었습니다. 이러한 조형개념은 20세기 후반까지 가구를 비롯한 모든 대량생산품에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바우하우스의 기능주의에 입각한 디자인의 주류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으로 옮겨가게 되었으며 미국의 실험주의(American experiment)로 발전, 유동체에 나타나는 우아하고 인간공학적인 곡선을 사용한 좌석가구의 개념과 규칙적이고 여러 형태로 변형이 가능한 단위개념으로서의 수납가구의 성격을 확립시켰습니다.


12. 스칸디나비아 가구

한편 , 유럽에서는 가구의 중심지가 신선하고 감각적인 새로운 세상의 흐름을 제시한 이탈리아와 스칸디나비아가 주도적 역할을 하게됩니다. 특히, 스칸디나비아의 가구 디자이너들은 전통적인 물질과 가치에 대한 숭배와 가구 양식의 현대적 진화에의 필요성 사이에서 조화된 일치점을 발견, 네오모더니즘(neo-modernism)의 탄생을 예고하게 됩니다. 즉, 스칸다나비아의 가구 디자인은 예술과 공예운동의 사상을 충실히 이행하려는 데 그 근원을 두고 디자이너와 생산자 사이의 흥미와 요구가 완전히 합치되는 공통점을 찾는 데 그 특색이 있습니다. 이탈리아의 가구 디자이너들은 기능에 우선한 과장된 형태의 양식화를 추구하였습니다.


13. 포스트 모더니즘


1960년대의 네오모더니즘 혹은 포스트모더니즘은 디자인과 재료에 있어서 안전성과 강도를 완벽하게 표현하려는 개념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러한 개념은 오늘날 거의 모든 가구에 폭넓게 수용되고 있습니다. 1960년대 후반에는 팝 아트가 가구에 영향을 미치게 되어 전통적인 가구개념은 재치와 유머 그리고 재료와 혁신에 비중을 두는 새로운 논리에 의해 대체되기도 하였으나 일시적인 경향으로 머무르고 말았습니다.


14. new wave 운동

1970년대에는 미약하기는 하지만 수공예 개념에 입각한 철학적이고 인간적인 메시지 전달을 위한 표현의 매체로서 가구를 이용한 뉴 웨이브(new wave)운동이 일어났으며


15. memphis 가구

1980년대에는 해학적이며 혁신적인 디자인과 다양한 색채, 시각적 불균형 등의 조형개념을 추구하는 이탈리아의 멤피스(memphis)가구가 대두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고대가구의 역사』


(1) 이집트

이집트의 문화는 진보적이고도 장대하며 위엄 있는 문화였다. 이집트의 문화가 생성된 이면에는 종교가 있었으며, 이집트인의 종교관은 그들이 제작한 모든 조형물에 적용되고 있다.


1) 고대왕국(BC 4500-2445)

 - 수도는 멤피스, 기제에 피라미드가 세워짐

2) 중기왕국(BC 2445-1580)

 - 힉소스(Hyksos)유목민족의 침입으로 문화의 발전이 저지됨

3) 신 왕국(BC 1580-633)

 - 수도는 테베, 이집트 역사의 황금기, 정치적으로는 정복의 시대이다.

4) 후기왕국(BC 332- AD395)

 - 예술의 쇠퇴기, 이민족의 지배와 침입이 잦아짐


이집트의 가구양식은 고대왕국시대부터 문화의 한 요소로 발달하였으며 신 왕국 시대에 절정에 이르렀으며 이후로 이민족의 침입으로 쇠퇴하였으리라 생각된다. 따라서 발굴된 대부분의 가구는 신 왕국 시대의 제작품이다. 이집트 가구의 종류는 수납용 가구 및 탁자형태의 가구도 있으나 좌석용 가구가 지배적이며 이러한 좌석용 가구는 이후 각지에서 발생하는 좌석가구 양식의 기본 형태가 되었다.

의자는 명예의 상징으로 고귀한 신분의 사람만이 사용할 수 있었다. 의자의 다리는 황소의 발굽이나 사자의 발톱을 조각하였으며 발굽 또는 발톱 밑에 작은 나무토막이 받쳐져 있는데 이것은 사자의 머리나 발톱, 소의 발굽 등 조각 장식과 함께 이집트 가구양식을 대표하는 것으로 이후에 발생할 유럽의 가구양식에 있어서 주요한 형태의 전형이 되고 있다. 이집트의 좌석가구는 스툴(stool)과 등받이의자가 대부분이며, 팔걸이가 부착된 자는 흔하지 않다. 이것은 의식 때에만 중요하게 사용되었다. 대표적인 팔걸이 의자로는 투탕카멘(Tutankhamen)왕과 헤테페레스(Hetepheres) 여왕의 금도금의자가 있다. 고대 이집트에 있어서 가장 일반적인 의자는 장방형 등받이 의자로 대체로 그 높이가 매우 낮다.

침대는 집권층만이 사용할 수 있었던 사치스런 가구의 본보기였다. 초기의 침대형태는 발을 두는 방향으로 침대가 경사져 있었고 흔히 침대 위에 초승달 모양의 목침을 두고 있다.

이상과 같이 이집트인의미학적인 표현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이집트 가구 양식은 가구의 구조적인 접합이 매우 치밀하도록 디자인되어 있으며 가구의 장식에 쓰이는 재료와 좌석에 사용된 직물의 특성을 발달시켰다.



(2) 그리스

그리스의 모든 건축과 가구에는 기하학적인 공식과 代數學에 기초를 둔 이론적 제도가 적용되었으므로 일정한 규격의 단위형태와 단위형태 상호간의 관계를 고려하여 적절하게 조합된 형태로 발전되었다. 따라서 건축과 가구의 양식은 직관적인 미를 내포하고 있다.


1) 에게 문화시대(BC2000-1000)

 - 인도-유럽계 유목민인 펠라스지안(Pelasgian)인의 정착 도리아인의 침입으로 크레타문명과 미케네 문명의 파괴 예술에 있어서 불모의 암흑시대

2) 고 시대(BC1000-480)

 - 식민지의 확장 및 해상무역이 왕성한 시대

 - 올림픽 경기의 시작

 - 건축에 있어 도리아식과 이오니아식의 생성

3) 황금시대(BC480- 400)

 - 페르시아와의 전쟁에서 승리

 - 페리클레스의 통치시대, 조각에 있어서 인간신체의 완전한 이상화를 표현함.

 - 건축과 가구는 조화와 균형을 갖춤

 - 그리스 역사상 최고 문화의 황금기

4) BC 4세기(BC 400-336)

 - 그리스문명의 지속적인 발전

 - 예술사론에 있어서 사실주의와 감상주의가 피디안(Phidian)의 이상주의와 대체되어 완벽한 기교를 강조함

5) 알렉산드 시대(BC 336-322)

 - 그리스 문화의 流布時代,

 - 사실주의의 전성기

 - 코린트 양식이 형성됨

6) 헬레니즘 시대(BC 323- AD30)

 - 알렉산드 제국의 분열

 - 예술의 쇠퇴, 로마제국에 합병됨

 - 헬레니즘은 로마의 문화형성에 영향을 줌


초기시대와 고시대의 대부분 의자들은 이집트의 의자와 유사하게 다리부분에 개나 사자의 발톱 등 동물의 다리로 장식하고 있으며, 키가 낮은 의자의 등받이 상단부는 백조의 머리형태를 조각하고 있다.

그리스 초기시대의 가구에 있어서 가장 경이로운 작품은 앞뒤로 벌어진 우아한 곡선의 다리와 둥글게 에워싼 등받이의자, 즉 장식을 배제한 클리스모스(klismos)  의자로 해제소(Hegeso)벽화에서 그 완벽한 모습을 엿볼 수 있다. 클리스모의자는 그리스의 의자의 종류 중 가장 세련된 것이었으며 의자의 다리에 나타난 곡선의 형태로 미루어보아 증기압으로 목재를 가공하는 기술이 있었으리라 추측된다.

등받이와 팔걸이가 없는 스툴은 디프로스(diphros)라고 알려져 있는데 이것은 이집트와 아시리아의 의자에서 파생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스툴의 모습은 파르테논(Parthenon)신전의 벽화에서 그 예를 찾아볼 수 있다.

카우치(couch)와 소파(sofa)의 원형이라고 생각되는 클리네 침대(kline)는 두 가지 역할, 즉 잠잘 때와 식사 때의 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다. 이 침대는 이집트의 침대와 달리 침대의 경사를 없애버렸으나 동물의 다리형태는 그대로 적용하였으며 침대의 머리 부분에 장식된 소용돌이 무늬는 로마의 침대에 까지 지속적으로 사용되었다.

BC 4세기경부터 장방형의 탁자는 점차 다리가 세 개 달려 있는 둥근 형태의 탁자(tripod table)로 대체되었으며 이러한 둥근 탁자는 헬레니즘 시대에 크게 유행하였으며 로마 시대 탁자의 전형이 된다.

키보토스(kibotos)는 이집트 양식으로 된 의복함으로 상류층의 부인을 묘사한 고대의 테라코타(terra cotta)벽화에서 그 예를 볼 수 있다. 그리스의 키스테(kiste)라는 말에서 유래한 키보토스는 일반적으로 작은상자를 뜻하며 라틴어로는 시스타(cista), 영어로는 체스트(chest)로 변화하였다. 



(3) 로마


1) 원시시대(BC 1000-509)

 - 아리안 인종의 일족인 라티니스(Latinis)족이 로마를 건설, 에트루리아인의 침입, 테라코타 장식

2) 공화정 시대(BC 509 -27)

 - 공화정치의 성립

 - 지중해의 해상권을 장악

 - 그리스 문화의 지속적인 영향

 - 라틴 문자의 성립

 - 건축에 있어서 아치 양식

3) 제국시대( BC 27 -AD 180)

 - 로마 문화의 융성

 - 황금시대를 이룸

4) 분열시대( AD 180- 476)

 - 로마제국의 분열

 - 문화의 쇠퇴기

 - 로마제국의 멸망


로마시대에는 欌(장)이나 函(함)과 같은 수납가구는 발달이 미약하였고 탁자나 의자 그리고 침대와 같은 좌석가구가 발달하였다. 고대로마에서는 시민을 사회제도로서 여섯 계급으로 나누고 최상급의 시민을 클라시커스(classicus)라고 하였다. 이것이 전래되어 예술상의 한 양식으로 발전하였고, 이러한 양식의 작품을 클래식(classic)이라 부르게 되었다.

그리스 침대인 크리네와 같은 형태와 용도인 렉터스(lectus)는 로마인들의 가구 중 가장 선망의 대상이 되는 품목이었다. 특히, 청동과 상아로 된 많은 장식물들이 정교한 세공에 의해 침대의 머리 부분과 다리부분에 장식되었다. 침대에 있어서 가장 일반적으로 눈에 띄는 변화는 긴 침대의 球根형태의 다리로 후기 공화정치시대와 초기 제국시대에 대중적인 가구양식이 되었다.

좌석가구로는 솔리움(solium), 카테드라(cathedra), 셀라쿠룰리스(sellacurulis), 바이셀리움(bisellium)등이 있는데

solium은 왕좌를 말하는 것으로 그리스 양식과 유사하나 장식부분이 보다 정교하게 처리되어 있으며 구성에 있어서 보다 대담한 면을 보여주고 있다.

cathedra는 그리스 클리스모스에 해당하는 의자로 여인들의 화장대에 딸려 있는 의자로 사용되었으며 형태는 두꺼운 다리를 부착하여 무겁고 균형이 맞지 않는 구성과 넓은 폭으로 형성된 조각 등받이를가지고 있다.

sellacurulis는 선삭가공의 환봉의 다리를 가진 스툴이나 X자 형태의 구부러진 다리를 가진 스툴의 일종이다.

bisellium은 2인용 스툴로서 이 두 가지 모두는 원로원의 의원과 같은 상위계급의 고관들이 사용하였다.

원형의 天板과 삼각의 다리로 형성된 트라이포드(tripods)라 불리는 삼각대탁자와 두꺼운 목재로 된 장방형 천판과 대리석의 構脚으로 형성된 탁자가 있다. 구각으로 된 거대한 탁자는 주로 야외에서 사용되었으며 이후 르네상스 시대의 장방형 식탁인 리펙토리 탁자(refectory table)의 원형이 되었다. 이 탁자를 트레스틀(trestle)탁자, 즉 架臺卓子라고 부른다. 이 탁자에는 그리핀(griffin), 독수리의 머리와 날개, 사자의 머리, 그리스 양식의 群葉(군엽,Greek foliage) 등을 다리에 조각하고 있다.




『중세 및 근세 가구의 역사』

로마 제국의 멸망이후 전개된 중세는 4-15세기에 이르는 천 년이나 되는 기간으로 동로마 제국을 시발점으로 종교와 정치의 밀월시대가 계속된다. 그러므로 중세의 모든 예술의 개성 은 종교적 규범이나 제약 아래서만 성립되었다.



(1)시대구분


1. 비잔틴 양식

동로마 제국시대, 로마의 예술양식과 동양의 페르시아나 아랍의 예술양식의 혼합화, 건축에서 둥근 천장을 사용한 것이 특징이다.

2. 로마네스크 양식

프랑스를 중심으로 발전, 반원의 아치, 둥근 천장을 건축에 사용하였다.

3. 고딕 양식

프랑스와 서구 각국에 전파된 유형, 로마의 건축양식을 토대로 하고 있으며 수직선을 많이 사용하였다.



(2) 가구양식


1. 비잔틴

비잔틴 양식의 가구로는 남아 있는 것이 적다. 그 이유는 이 양식이 과도기적인 것으로 후기의 로마네스크 양식에 쉽게 흡수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가구로는 사자의 머리와 발톱, 돌고래 등의 고대 이집트와 그리스의 조각 장식을 사용한 접을 수 있는 스툴인 쿠울(cuoule)이 있고 목조의자에 정교한 조각 장식을 한 다음 금판을 덮고 등받이 부분에 당시의 건축양식을 사용한 성피터(St. Peter)의자, 7세기에 제작된 청동에 도금한 다가베르트(Dagabert)의자, 동방의 상아조각의 양상을 보여주는 상아로 된 막시미아누스(Maximianus)의 司敎座 등이 있다.


2. 로마네스크

로마네스크 양식은 비잔틴 양식에 지방특유의 요소가 융합하여 형성된 양식이다.

이 로마네스크 양식은 가구를 비롯한 장식미술에 있어서 다분히 동양적이고 추상적 형태의 기하학적이고 환상적인 세계를 드러내고 있다. 로마네스크 양식의 가구로는 독일지방에서 제작된 旋削加工으로 만든 목제 丸奉의 다리를 부착한 농민의자와 스칸디나비아 지방에서 제작된 사각형의 다리와 厚板으로 만들어진 의자 및 책상, 의류를 수납하고 걸상을 겸용한철과 청동장식의 궤, 13세기 중엽에 스위스에서 제작된 아치형의 다리를 부착시킨 호두나무 궤 등이 대표적인 가구다.


3. 고딕양식

고딕 양식의 가구는 비율, 치수 등에 있어 외형상 장중한 것이 대부분으로 직선을 선으로 한 장방형으로 되어 있다.  또한 가구의 접합부분도 거의 직각으로 구성되어 딱딱한 느낌을 준다.

고딕 양식의 가구는 도금을 하거나 건축적인 주제를 가구의 양식으로서 적용한 것이 가장 큰 특징이며 천의 주름과 같은 부조를 가구표면에 장식하는 리넨 폴드(linen fold)장식과 매듭형태의 부조장식인 트레스리(tracery) 등을 적용한 것도 고딕 가구의 특징이다.

의자는 대부분 직립형이며 등받이에 문장조각이나 窓飾, 圓花窓飾의 부조를 하였으며 목재의 天蓋를 가진 의자도 있다. 상자형태의 函은 중세시대의 가구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이었다. 왜냐하면 이 함은 정치적 여건이 불안전한 기간 동안 가구의 필수적 장점인 운반의 용이성을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침대는 네 귀퉁이에 支柱를 부착시키고 그 위에 덮개를 씌웠으며, 트런들(trundle) 침대는 하인이나 아이들이 사용하는 소형의 脚輪寢臺를 가르키는 것이다. 고딕 양식의 가구나 북부와 중부의 유럽에서 제작되는 동안 회교도의 지배를 받고 있던 이베리아 반도에서는 가구에 기하학적인 장식을 적용한 플라테 (plateresco)양식을 발전시켰다.


4. 르네상스 시대

르네상스의 본질은 중세 종교의 속박에서 인간성을 해방시키는 휴머니즘(humanism)의 정신에 있었다.

이것이 조형미술의 경향으로서는 그리스와 로마 시대의 조형양식으로의 복귀를 의미하는 고전(classic) 양식의 부활로 나타나게 되었다.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 가구

cassone 

상자형태로 혼례용의 함, 또는 여행용 가방 등으로 사용되었다. 뚜껑에는 경첩을 부착하고 뚜껑은 좌석이나 탁자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cassapanca

cassone의 뚜껑위에 등받이와 팔걸이를 부착시킨 형태이다.

즉, 크다란 안락의자(sofa)나 세티(settee) 형태의 일종의 카손느 이다.

credenza

크레덴자에는 윗면이 정면으로 돌출한 선반형태의 장식이 있다. 하단분에는 서랍이나 여닫이문을 설치하여 그 속에 식기를 보관하였다.

sgabello

가벼운 목조의자로 식탁용이다. 초기의 제작품에는 3개의 판각다리와 8각형의 좌판 직선의 등받이를 가지고 있다. 후기의 형태는 2개의 판각과 투각한 등받이에 세로널이 부착되어 있다.

sedia

직선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다리와 등받이를 발루스터(baluster)라는 건측의 기둥 양식을 적용한 의자이다. 현대의 디자인 관점에서 볼 때 전혀 안락하지 못한 의자이다.

savonarola

S자형의 굽어진 나무 조각을 조합하여 만든 의자이다. 낮은 등받이와 팔걸이가 부착되어 있으며 다리는 X자형으로 짜여져 잇다. 특히 단테(dante)형은 팔걸이나 다리에 장중한 조각을 하고 등받이나 좌석에 천이나 가죽을 씌우는 것이 보통이다.

letto

일종의 카손느식으로 된 상자형 침대이며 발을 두는 쪽으로 목판을 부착, 조각과 색채로 장식한 비교적 중후한 형태의 가구이다

탁자

탁자는 천판을 통나무로 하고 다리는 도리아식의 원주 또는 회전 선삭하여 제작한 발루스터 기둥형태로 되어 있다.


5. 바로크 시대

르네상스 말기에 이르러 에술가들은 엄격한 고전의 범주에서 빠져 나오려는 시도를 하게 되었다. 그리고 르네상스 시대를 통하여 재현되고 충실해진 고전양식은 자연과학의 기초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기술사의 발견과 발명이 이 쏟아져 나옴에 따라 점차로 변형되어갔다.

17세기를 바로크 시대라고 하는데 바로크라는 말은 불규칙한 진주를 의미하는 스페인어 바루카(barrucca)에서 유래한 말이다. 바로크 양식의 특징은 르네상스 시대의 정연하고 단정한 것에서 비 정연하고 유동적인 형식으로 변하여간 데 있다. 바로크 양식의 가구는 직선과 곡선이 조화된 구성에 의하여 장중하고 호화스러운 장식성을 낳고 있다. 바로크 시대에는 대형가구가 유행하였으며 풍부한 조각장식과 강한 색채의 대비 및 컴퍼스에 의해 만들어진 곡선가구가 발달하였다. 가구의 디자인은 대체로 장방형이고 가구의 다리가 매우 둔하게 만들어졌었는데 사각목을 많이 사용했고 밑으로 내려갈수록 가늘게 하여 대각선으로 보강하는 방법을 썼다.


6. 로코코 시대

로코코라는 말은 프랑스어인 로카유(rocaille)와 코키유(coquille)라는 두 단어가 합쳐진 글자로 로카유는 자갈을, 코키유는 조개껍질을 의미한다.

따라서 18세기의 로코코시대가구는 아름다운 감각이 강조되었다.

로코코는 바로크양식이 남성적인 것에 비하여 경쾌, 섬세하고 여성적인 곡선과 유려(流麗)한 곡면을 즐겨 사용하여 단순한 직선이나 직각을 피하고 있다.

장식은 조각을 주제로 하고 색채는 담청(淡靑), 담록(淡綠) 또는 백지(白地)에 금(金)의 배색을 풍부하게 사용하고 있다.

로코코 시대의 가구는 기술과 안전성에 있어 거의 완벽에 도달해 있었으며 인체의 치수를 고려하여 디자인되었다.

따라서 가구의 형태는 바로크 시대와는 달리 허세를 부리지 않았다.

장식에는 상감세공장식인 마어키트리와 금속장식인 올모루가 성행하였으며 특히 중국의 옻칠가구가 유행하였다.




『가구의 양식』


(1) 서양의 전통가구

서양의 실내 디자인 및 가구의 역사는 고대로부터 시작하여 중세와 르네상스 그리고 바로크, 로코코, 신고전, 빅토리아를 거쳐 현대에 이르고 있습니다. 현대는 산업 혁명 이후에 시작된 기계문명 및 대량생산에 특징 지워지며, 그 이전과는 다른 가치에서 출발하였으므로 전혀 다른 모습으로 전개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시대적 양식들은 현재에도 여전히 사용되고 있으며, 새로운 양식의 모체가 되면서 계속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서양의 전통 가구 중에서도 18세기의 프랑스와 영국의 가구는 현대의 실내에서 가장 널리 쓰이고 있는 종류입니다.


(2) 한국의 전통가구

한국의 전통가구로서 그 양식이 명확하게 밝혀져 있는 것은 조선시대 이후의 가구입니다. 조선시대의 가구 중에서도 그 유물이 현존하는 것은 주로 말기의 것으로 2백년 전 이상의 것은 찾아보기 매우 힘듭니다. 따라서, 한국 전통가구의 양식은 일반적으로 조선시대 말기의 것부터 그 원형을 찾고 있습니다. 한국의 전통가구는 장, 농, 반다지, 문갑 등 수납 가구가 주류를 이루고 있어서 그 종류는 많은 편이 아니지만 가구마다 크기나 모양, 장식 등이 모두 달라 디자인의 다양성 측면에서 볼 때 그 폭이 매우 넓습니다. 서구화 일변도인 것처럼 보이는 현대 생활에 있어서도 한국의 전통 가구 양식은 끊임없이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데, 특히 그 형태는 많이 변화되었지만 아직도 장롱, 문갑, 사방탁자 등은 안방의 중요한 가구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또한, 생활은 서구화되면서도 전통가구에 대한 관심은 더욱 높아져서 고가구나 모조 고가구를 실내 장식품으로 사용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3) 현대가구

현대가구는 전통가구의 상반된 개념을 의미합니다. 디자인에 있어서의 현대란 기능주의 이념이 실체화된 바우하우스에서 실체화 되었습니다. 물론 기능주의 이념이 싹트기 시작한 것은 그 보다 훨씬 더 이전부터였지만 전통주의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노력은 미술 공예운동, 아르누보 등 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야만 했습니다. 바우하우스는 1913년 독일의 바이마르에 세워진 새로운 조형대학교 였습니다. 이 학교의 초대 교장이었던 발터 그로피우스는 기계시대에 맞는 디자인을 위해서는 새로운 디자인 교육이 필요하다는 선언문을 내걸고, 새로운 교육은 기능주의 이념으로부터 출발한다고 주장 하였습니다. 여기서의 기능주의 이념이란 어떠한 디자인이 그 기능을 하는 데 불필요한 모든 장식을 배제하며, 가장 기능적인 형태를 창조한다면 그것이 곧 가장 아름다운 형태가 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이러한 생각은 건축분야에서 철골과 유리만으로 구성된 고층 건물을 실현시켰고, 실내의 모습은 병원을 연상하리만큼 차갑고 깨끗하게 정돈되었으며, 가구는 모든 장식적 요소가 제거된 채 구부려진 강철관이나 몰딩된 합판 등 새로운 재료와 새로운 모양으로 제조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로부터 현대 가구의 이미지는 세계 어느 곳에서나 공통된 것으로 단순하고 기하학적이며 차갑고 기능적인 것으로 고정 되었습니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에는 이러한 기능주의에 대한 반발로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새로운 이념이 싹트기 시작 했습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기능주의가 장식을 제거시킨 것이 일반 대중에게 지나친 엘리트 감각을 강요한 오류였음을 지적하고, 장식은 대중이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상징과 의미 전달의 수단이므로 이의 회복이 필요함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현재 우리의 주변에는 모더니즘의 현대가구와 포스트모더니즘의 현대가구가 공존하면서 선택의 영역을 넓혀 주고 있습니다.




『가구의 종류』

가구의 종류는 여러 가지 관점에서 분류해 볼 수 있습니다. 우선, 가구가 인간과 건축을 연결해주는 매개체라는 측면에서 보면, 가구가 어느 쪽에 더 밀접한 관련성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의자나 침대와 같은 인체계 가구, 작업대나 테이블 같은 준 인체계 가구 그리고 장식장이나 옷장과 같은 건축계 가구로 분류됩니다. 또한 생산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그 구조에 따라 생산라인이 아주 다르기 때문에 의자나 책상과 같이 골재를 위주로 하는 가구, 수납가구와 같이 판재를 위주로 하는 가구 그리고 소파나 안락의자와 같이 패딩과 덮개를 씌우는 가구로 분류합니다. 또, 재료에 따라서는 목재가구, 철재가구 등으로 분류하기도 합니다.

한편, 가구 디자이너의 입장에서는 가구의 사용자나 고객에 따라 주택에서 사용되는 주거용 가구, 학교나 도서관 등 공공시설에서 사용되는 공공용 가구, 식당·카페·호텔 등에서 사용되는 상업용 가구 등으로 분류하는 것이 편리합니다.


(1) 대량생산 가구

대량생산 가구는 가장 손쉽게 구입할 수 있는 가구로, 가구 전문점이나 대리점 또는 상설 쇼 룸 등에서 직접 가구를 보고 필요한 가구를 선택해서 구입하면, 늦어도 1∼2일 이내에 배달될 수 있는 것이 가장 큰 장점입니다. 즉, 주문한 것이 과연 어떤 모양일까 하는 궁금증을 느낄 필요도 없고 오래 기다릴 필요도 없습니다. 대량생산 가구의 또 다른 이점은 하나의 디자인을 위해 기계생산 준비만 되면 그것을 대량으로 만들기 때문에 품질에 비해 값이 비교적 싸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대량생산 가구는 문자 그대로 대량으로 만들기 때문에 구매자 개개인의 요구사항을 일일이 맞출 수가 없습니다. 구매자는 모든 요구사항이 다른 개인이지만, 생산자측에서 보면 힘껏 해도 10개의 집단으로 나누어서 그 요구사항을 맞춰 주기도 힘들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쇼 룸에 전시된 가구의 종류가 많아 보여도 막상 필요한 조건을 들고 나가보면, 크기는 맞는데 양식이 맞지 않고, 색상은 맞는데 장식이 맞지 않고, 양식은 맞는데 재료가 맞지 않는 등의 일들이 자주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필요한 조건에 꼭 맞는 가구를 찾아내는 일은 그렇게 쉽지 않다는 점이 대량생산 가구가 지닌 단점입니다. 그리고 또 다른 단점은 대중을 대상으로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흔하다는 것입니다. 즉, 대량생산 가구로 개성 있는 공간을 만들기는 쉽지 않습니다. 따라서, 대량생산 가구가 지닌 장점과 단점을 잘 생각해서 손쉽게 비교적 싼값으로 구입하는 것이 중요한 경우에는 대량생산 가구 중에서 최선의 것을 구입하고, 그보다는 필요한 조건에 꼭 맞고 개성 있는 공간을 만드는 일이 더 중요한 경우에는 맞춤 가구를 구입하는 것이 효과적 입니다.


(2) 맞춤 가구

오늘날과 같은 대량생산의 시대에 맞춤 가구를 구입한다는 것은 상당히 사치스러운 생각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특별히 요구되는 형태나 크기의 디자인을 찾을 수 없거나, 실내 디자인의 독특한 이미지를 위해 투자할 용의가 있는 경우라면 맞춤 가구를 주문하기 위해 가구를 디자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 할 수 있습니다. 물론 맞춤 가구 전문 디자이너에게 필요한 디자인을 의뢰할 수도 있겠지만, 실내 디자이너가 전체적인 이미지에 맞도록 가구를 디자인해서 제작만 의뢰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맞춤 가구 디자인은 우선, 특정한 실내의 개념과 통일성을 이룰 수 있도록 명확한 디자인 목표를 세우고, 아이디어 스케치 과정에서 다양한 형태를 시도한 후에 디자인 결정을 내리고, 재료와 질감을 결정하여 목공소나 맞춤 가구 전문업체에 제작 의뢰를 주문하는 과정으로 이루어집니다. 맞춤 가구는 개개인의 독특한 요구사항을 만족시킬 수 있는 장점이 있는 한편, 소량의 제작이기 때문에 가격이 비싸다는 단점이 있지요. 또, 맞춤 가구 주문 시에는 솜씨 있는 제작자를 잘 찾아야 한다는 점과 제작 기간을 미리 점검해야 한다는 점을 감안해야 합니다.


(3) 시스템 가구

시스템 가구(system furniture)는 최근에야 일반화된 새로운 가구 개념입니다. 시스템 가구와 유사한 개념으로 모듈러 가구(modular furniture), 유닛 가구(unit furniture), 섹쇼널 가구(sectional furniture) 등이 있습니다. 하지만, 명칭은 다양해도 그 기본 개념은 모두 시스템 가구를 의미하는 것이라 하 수 있습니다. 시스템 가구의 기본 개념은 하나의 전체를 이루는 가구가 단일 구조로 이루어질 것이 아니라, 여러 개의 부분들로 이루어지도록 하고, 이 부분들이 서로 연결성을 가지고 또, 각 부분들이 전체와 연결성을 가지게 함으로써 다양한 조합이 가능한 하나의 전체를 이룰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가구에서 각 부분들이 연결성을 가지게 하려면 척도의 조정, 즉 기본 모듈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주방의 수납장 기본 모듈을 10cm로 한다면, 모든 부분의 기본 단위가 10cm, 20cm, 30cm 등으로 전개됨으로써 필요에 따라 10cm의 부분 4개와 20cm의 부분 2개 그리고 40cm의 부분 1개가 손쉽게 조합되는 등 그 조합의 가능성은 무한히 전개될 수 있는 것입니다. 유닛 가구는 이러한 시스템의 개념에서 단위를 중심으로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모듈러 가구는 기본 단위 척도를 중심으로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섹쇼널 가구는 단위들이 분리·조합된다는 점을 중시하여 붙여진 이름일 뿐, 이 모두가 시스템 가구의 개념에 포함되는 것입니다. 단지 유닛 가구는 수납분야에서, 모듈러나 섹쇼널 가구는 분리·조합이 가능한 소파를 지칭하는 것으로 빈번히 사용되어 왔을 뿐입니다.

시스템 가구는 기본 단위 부분들만 대량생산해 놓았다가 주문에 따라 부분들을 조립해서 완성품을 만드는 반생산 제품이라 할 수 있지요. 따라서, 대량생산 가구의 장점인 구입의 신속성과 저렴한 가격 그리고 주문가구의 장점인 개별적 요구에 부응할 수 있다는 점을 모두 수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개별적 요구에 맞출 수 있는 범위가 크기와 구조에 한정되어 있고, 가격은 자연히 대량생산 가구보다는 고가라는 부분이 있습니다. 현재 시스템 가구는 사무용 가구 분야와 주방 가구 분야에서 많은 발전을 이루어 실내 디자인을 용이하게 하였으며, 공간의 효율적 사용에도 크게 기여하고 있습니다.




『가구양식의 형성』

가구양식의 변천과정은 특정시기에 각 민족에게 공통된 정신적 표현방법을 나타내는 시대양식의 변천에 근거를 두고 있다.


(1) 서양

고대의 이집트에서 현대의 미국에 이르기까지 문화적 , 정치적 중심권의 변천경로를 따라서 각기 다른 시대와 장소에서 다양하게 형성, 발달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종교 및 건축양식의 변천과 유사한 경로를 가지고 있으며 시대별로 명확한 구분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발달과정에서 파생된 가구의 종류도 매우 다양합니다.

그러나 19세기 말에 산업혁명을 분기점으로 가구 양식이 종래의 종교와 사상의 영향권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디자인의 개념에 입각한 전개를 시작하게 되므로 서양의 가구 양식에 대한 이러한 대략적인 관점은 근대까지 회화나 조각, 건축등에 적용된 포괄적인 개념으로 시대적인 양식의 디자인과 독자적이고 엄격한 법칙에 의 해 새롭게 창조된 개념의 현대디자인으로 구분하여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가구의 형태에 대한 표현 방법으로서 서양의 가구 양식은 전체적인 시대를 통해서 볼때 사실적인 표현과 추상적인 표현이 반복하면서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2) 동양

문화적 발달과정에 따라

 중국문화권

 인도문화권

 아랍문화권

가구양식의 발달은 주로 동북 아시아지역의 중국문화권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으며 인도문화권과 아랍문화권은 지역주민들의 종교와 생활양식 및 자연환경의 조건, 이민족들의 잦은 침입으로 가구의 발달이 미약하였습니다. 중국을 중심으로 발달하게 된 동양의 가구양식은 그 발달과정이 서양의 가구양식과는 대조적으로 거의 고정된 문화적 지역적 위치와 장소를 바탕으로 각 민족의 고유한 전통 양식에 외래문화를 흡수 변형시켜 독자적인 양식을 만들었습니다. 이러한 동양의 가구 양식은 대체로 중국의 주변국가에서 형성된 평좌식 생활양식에 중국의 문화적 요소가 결합하여 성립 발달하였습니다.





『가구의 선택』


(1) 인간공학적 배려

가구와 인간과의 관계를 원할히 하는 인간공학적 배려는 가구 디자인을 선택할 때,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사항입니다. 즉, 가구의 크기, 구조, 기능이 인간의 크기, 구조, 기능과 얼마나 잘 부합되도록 고안되었는가 하는 점입니다.

작업의자의 경우는 인체를 바른 자세로 장시간 유지시켜야 하므로 등받이의 경사는 95∼105°를 넘지 않아야 하고, 등받이의 형태는 특히 요추가 잘 받쳐지도록 고안되어야 합니다. 또한, 좌면의 높이, 너비, 깊이 등도 사용자의 인체치수와 부합되는지 직접 앉아보고 그 적합성을 점검해 봐야 합니다.

안락의자나 휴식의자는 자세를 자유롭게 변화시킬 수 있도록 고안되어야 합니다. 지나치게 푹신한 의자는 안락해 보이기는 하지만 자세를 바꾸기 힘든 문제가 있지요. 특히 등받이의 경사가 115°이상인 될 경우에는 머리를 기댈 수 있도록 고안되어야 하고, 안락의자에 있어서 팔걸이는 필수적입니다.

테이블류 중 식탁의 경우는 상면의 높이가 의자에 앉았을 때 편안한 관계가 되는지를 보아야 하고 너비는 한 사람당 60cm 정도의 공간이 할애될 수 있는지 검토되어야 합니다. 또한, 식탁의 다리가 앉은 사람의 다리를 방해하지는 않는가도 살펴보아야 합니다.

책상이나 작업 테이블은 발바닥이 바닥에 편안히 닿는 의자에 앉았을 때 팔꿈치 정도의 높이가 되는 것이 적당하지요. 책상이 높아서 필요 이상으로 어깨를 올리거나, 너무 낮아서 구부리게되면 피로가 쉽게 오기 때문입니다.

수납 가구에 있어서는 접근성과 가시성이 중요한 기준이 됩니다. 즉, 수납한 물건을 쉽게 꺼내고 넣을 수 있도록 고안되어야 하고 또 쉽게 볼 수 있도록 깊이가 조절되어야 하지요. 따라서 수납물의 사용 빈도가 높은 물건일수록 그 수납고는 몸을 구부리지 않아도 되는 영역에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서랍, 선반, 고리, 문의 형태도 이러한 원칙에 부합되었는지도 점검해야 합니다.


(2) 구조의 안전성과 성능

가구는 한 곳에 놓아두고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접촉하면서 부단히 사용되며 때로는 본래의 목적과 달리 오용되기도 합니다. 가구가 구조적으로 안전성을 가지고 있다면 사용되는 과정에서 일어나기 쉬운 어떠한 경우에도 안정된 평형이 유지되어야 합니다. 즉, 사람들은 흔히 테이블 모서리나 의자의 팔걸이나 걸터앉기도 하고, 의자 위에 올라서기도 하며, 서랍장의 모든 서랍을 한꺼번에 열어놓는 경우도 있습니다.

가구는 이러한 모든 경우에도 안전성을 유지해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생각지도 않은 위험한 사고 등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지요. 따라서, 가구는 어떠한 경우에도 충분히 안전성을 유지할 수 있는지 점검해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가구의 성능은 재료와 부품 그리고 접합부위의 강도와 직결되는 문제입니다. 가구는 외부로부터의 힘이나 충격에 대해 평형을 유지해야 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오랫동안 지지해야만 하지요. 그러기 위해서는 가구의 무게가 어느 한 지점에 집중되지 않고 여러 곳으로 분산되도록 고안되어야 합니다.

가구의 성능은 짜임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는데 짜임의 접촉 면적이 넓을수록 견고한 짜임이 됩니다. 이는 또한 힘을 분산시키는 데도 유리하며 구조를 보강하는 짜임이 되지요. 따라서, 가구는 외형상의 구조나 양식만을 보고 선택할 것이 아니라 그 가구에 앉아보고, 열어보고, 들어보고, 밀어보는 등 모든 세심한 점검을 필요로 합니다.


(3) 심미성

하나의 가구가 사용자에게 정서적인 쾌감과 만족감을 주기 위해서는 기능성만으로는 부족하지요. 즉, 기능성을 위해 창조된 형태가 미적 질서에 부합될 때 완전한 만족감을 줄 수 있는 것입니다. 가구의 형태와 질감이 걸맞지 않다거나, 색채나 패턴은 훌륭한데 모양이 어색하다거나 하는 느낌은 심미성이 부족하기 때문이지요. 즉, 가구를 이루는 구조, 색채, 질감, 크기, 비례, 모양 등의 여러 가지 요소가 다양성 속에서도 전체적인 하나로 조화를 이룰 때 가구는 미적 특성을 지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심미성에 대한 미의 기준을 정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왜냐하면 미는 논리가 아닌 경험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미적 가치가 높은 것이어도 그것을 보는 사람이 그것을 경험할 수 없으면 의미가 없기 때문이지요.

물론 심미성은 시간이 지나도 그것이 전해주는 미감이 변하지 않는 절대 가치이므로 개인 취향이나 유행성과는 구분되는 개념이지요. 유행성은 한 시대에만 통용되는 취향으로서, 미적 가치를 지닌 것이 유행될 수는 있지만 유행되는 것이 모두 미적 가치를 지닌 것은 아니기 때문이지요.


(4) 상징성

사람들은 자신이 소유하는 물건을 통해서 자신의 가치관과 개성, 또는 신분을 나타내게 되지요. 따라서, 가구를 포함한 모든 물건의 디자인은 상징적 가치를 지니게 됩니다. 이러한 상징성은 사람들이 의도적으로 그것을 표현하지 않는 경우에도 보는 사람에게 전달되는 특성을 지녔는데, 그것은 사람들이 어떠한 대상을 지각할 때 그 자체만으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그 주변여건과의 맥락속에서 통합적으로 이해하려는 지각적 속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사람들은 어떤 가구가 기능적으로나 심미적으로 거의 완벽한 가치를 지녔다 하더라도 자신의 취향이나 독특한 의미를 지닌 특성이 빠져 있다면 만족하기를 꺼려하지요. 이 때문에 어떤 사람은 서양 전통가구를 선택하고, 어떤 사람은 현대가구를 선택합니다. 그 어느 것이 더 기능적이거나 더 미적 가치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것이 가지는 상징적 의미가 자신의 취향을 나타내주기 때문이지요.



『한국의 가구 역사』


(1) 선사시대

리민족의 최초의 주거환경은 수혈형식이었는데, 고조선시기를 거쳐 한사군이 설치된뒤 점차로 초옥토실(草屋土室)로 변하여갔습니다. 초옥토실이란 지상으로 나타난 귀틀집 형태로, 통나무를 쌓아올리며 짓기 때문에 벌목용 도끼가 필수적으로 사용되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도구의 발달이 저장용구인 가구에도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2) 삼국시대

이 시대의 주거양식은 《신당서 新唐書》 동이전(東夷傳)의 고려조를 보면 귀족층은 목조가구식(木造架構式)의 고상주거양식(高床住居樣式)이고, 서민층은 장갱(長坑)을 놓고 좌식생활을 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예로 고분벽화를 살펴 보면, 각저총 후실 후벽에는 두 여인이 앉아 있는 의자와 평상이 보이고 수족형(獸足形) 다리를 가진 목제상(木製床)과 기물들이 주위에 널려 있습니다.

또한, 쌍영총 후실 북벽에는 휘장이 드리워져 있는 평상이 있고 그 위에는 보료를 깐 것이 모두 좌식 생활에 알맞는 높이를 하고 있습니다. 백제와 신라의 문화도 고구려와 흡사한 점이 많습니다. 특히, 신라에서는 고구려의 고상주거양식처럼 바닥이 높은 마룻방 구조를 볼 수 있어 판재(板材)를 이용한 평상, 의자, 궤안 등을 썼으리라 추측된다. 이는 《당서 唐書》 동이열전(東夷列傳)의 기록을 보아도 목재가구에 황칠(黃漆)이 유명하였음을 알 수 있다.


(3) 고려시대

《고려도경》민거조(民居條)의 기록에 의하면 이 시대의 주거양식은 온돌과 마룻방 구조가 결합된 형태인 것 같습니다. 다시 말하면 온돌이 더 개발되고 마룻방을 겹쳐 일반화된 상태입니다. 특히, “탑마다 두 손님이 앉는데 손님이 많이 모이면 탑을 늘려 각기 마주앉는다.”는 기록을 볼 때 탑은 평상과 같고 그 위에 소조(小俎)를 놓고 식사를 하는 좌식 형태의 도구임을 추측하게 합니다.

그리고 이 시대에는 나전칠이 유명하여 여러가지 유물이 보이는데, 이러한 상자는 대체로 장방형이며 의류 내지 귀중품을 보관하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또한, 《고려사》 열전에 주인원(朱印遠)이 세황마포(細黃麻布)를 두 농이나 바쳤다는 기록에서 당시에 농이 이미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더욱이 고려시대의 등촉구는 그 형태와 크기 등이 조선시대 유물과 많이 유사한 점이 흥미있습니다. 물론 이 시대의 장인들도 각종 기술을 발휘하였지만, 조선시대에 이르러 우리나라 전통가구의 독자적 방법을 나타낸 것은 이미 이 시대에 시작된 것으로 여겨집니다.


(4) 조선시대

조선시대에는 주자학이 내세우는 가부장적 윤리와 삼강오륜을 통한 가정도덕과 사회윤리가 확립되었습다. 이러한 사상적 배경이 양반과 상인로 엄격히 구분되는 신분제도를 낳았고, 가부장을 중심으로 한 대가족제도와 남존여비사상의 가족제도를 만들었으며, 주택도 이러한 신분질서에 따라 서로를 격리시키는 공간으로 구성되었습니다. 따라서 가구도 이러한 주택구조에 맞추어 발달되었습니다. 주택양식은 천연의 자재 (資材)를 이용한 단층 목조가구식 구조입니다.

각 방의 바닥구조는 기름먹인 장판지를 바른 온돌과 우물마루식 판재를 깐 마루가 대표적입니다. 실내의 벽, 천장, 창호 등은 호지법(湖紙法)에 의한 한지를 발랐고, 마룻방 천장은 사량가구식(四樑架構式)으로 하여 서까래를 노출시키며 그 사이에 백색 회반죽 마감을 합니다. 대체로 건물 벽체는 나무기둥 사이에 흙과 회로 마감하였으며, 지붕은 서민인 경우 초가와 흙담, 중류 이상은 기와와 화강석기초를 가졌는데, 완만하게 곡선을 그린 지붕선이 매우 아름답습니다.

평면구성은 대가족제도로 인하여 중류 이상은 동(棟)과 칸으로 나누어 사랑채와 안채의 공간구획이 이루어졌고, 서민은 한 동에서 실(室)로 나누어 사랑방(男)과 안방(女)으로 구분됩니다. 중류 이상인 경우 신분에 따라 동의 외곽에 행랑채가 있고 주택의 뒤나 옆에는 사당(祠堂)과 별당(別堂)이 있습니다. 각 실의 기능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사랑채, 사랑방

남성의 거실이자 접객공간이며 서재를 겸하고 있다.

누마루

흔히 대청마루와 연결되어 있어 유학자들의 예(禮)를 논하는 장소

침방

사랑채에 배치하여 침실 기능을 하는 장소이다.

서고

서책의 보관 또는 독서를 위한 방이다.

안채, 안방

가장 폐쇄된 공간. 안주인이 거처. 남편과 직계비속 외는 출입이 금지.

건넌방

대청마루를 사이에 두고 안방 건너편에 위치하여 자녀나 노부모가 거처.

웃방

안방 윗목에 위치한 공간으로 귀중품을 수장하는 장을 둔다.

마룻방

안방과 건넌방 중앙에 있으며, 관혼상제의 대사를 치르는 곳.

부엌

취사행동이 행해지는 곳이며 찬방/찬마루가 연이어 있다.

별채, 별당

본채와 분리되어 서예, 가무 기타 용도로 쓰이는 곳이다.

사당

선조의 위패를 모시는 곳이다.

행랑채 행랑방

대문채에 연결되어 노비를 비롯한 사역인이 거처하는 곳.

청지기방

청지기(비서)가 거처하는 방이고 사랑방과 인접하여 있다.

광, 측

광은 살림도구와 음식물을 저장하는 곳이며, 측은 화장실이다.


조선시대에는 목재를 주요재료로 하는 주택양식과 더불어 가구 역시 목재의 무늬를 잘 살린 형태로 발전되어 오늘날에도 널리 극찬되고 있지만, 형태뿐만 아니라 목공결구법 (木工結構法)에 의한 독특한 기술로써 독자적 방법을 나타낸 것은 우리나라 전통가구양식의 특색을 형성하였습니다.


(5) 한말~일제강점기

고종의 집정기는 조선시대 말기로서 새로운 개혁의 막을 올린 시기였습니다. 오랜 세월 유학의 영향으로 인한 지배층의 사회가 무너지고 새로운 민중중심의 동학사상이 전개되었고, 밖으로는 서구제국주의 열강과 일본에 의한 문호개방이 물밀듯 들어왔습니다.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에도 불구하고 임오군란과 갑신정변 이후 1910년에 경술국치가 되면서 이러한 시대적 변화에 휩쓸려 가구양식도 점차로 서구화되어갔습니다. 이때에 처음으로 서구문물의 혜택을 입은 곳은 바로 왕실이었습니다.

궁궐건축으로부터 실내장식, 가구, 공예품까지 서구화한 입식 형태로 변하였습니다. 따라서, 국내에서도 입식 가구가 제작되었고 서구식 가구와 전통가구가 공용되었습니다. 그뒤 광복과 함께 가구양식은 전통양식에서 절충식 양식으로 변하여갔습니다. 현재 궁중에 수장된 것 중 당시 유입된 17, 18세기 서양의 르네상스, 로코코양식의 가구와 중국의 화류가구 등을 볼 수

있습니다.

일제강점기에 유입된 가구로는 서랍이 많이 달린 장과 차단자라 하여 중국의 차탁자와 같이 개구부(開口部)가 많은 형태가 있습니다. 그리고 전래의 의걸이장이 이불장으로 쓰이다가 현대의 양복장으로 변한 것은 당시의 시대상을 잘 나타낸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뒤 마룻가 입식 생활의 접객공간으로 되면서, 소파가 등장하고 차탁자, 협탁(脇卓), 장식장 등의 서양가구가 발전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의 전통가구』

한국의 전통가구는 장,농,반다지,문갑등 수납가구가 주류를 이루고 있어서 그 종류는 그다지 많은 편은 아니지만,가구 하나하나 마다의 크기나 모양,장식등 이 모두 달라 디자인의 다양성은 그폭이 매우 넓다. 장롱,문갑,사방탁자등은 안방의 중요한 가구로 자리잡고 있다.


사랑방 가구

    

의걸이 장

의걸이 장은 그 내부를 높게 만들고 그 안에 횟대라고 하는 긴 막내를 설치하여 자주 입는 옷을 그때그때 꺼내 입기 편하도록 보관하는 용도로 사용되었다.현대에 사용되는 장롱은 이의거리의 장의 변형이다.

경축장

서책 및 문서를 보관하는 단층장으로 머릿장이라고도 한다.

 

서  장

책을 보관하는 장으로서 해충을 막는다 하여 오동서장이 일품 이다.

문  갑

문갑은 한쪽 벽에 한 쌍으로 놓아 실내에 강한 수평적인 요소를 부여하는 가구로서 주로 집문서나 중요한 문서류를 보관하는 용도로 사용되어 문갑이라 불린다.

 

  

사방탁자

개방이 선반으로 이루어진 가구를 탁자라고 하는데 선반이 정방형에 가까운 것을 사방탁자라고 한다.그것의 용도는 주로 붓 걸이,연적,도자기등을 장식적으로 올려 놓는데 사용하였다.

서  안

서안은 오늘날의 책상과 같은 것이다.서안은 보통 상 면과 한두 개의 서랍으로 구성된 단순한 형태인데 , 상 면의 끝이 두루말이 처럼 살짝 올라가고,굽어진 호족형의 다리를 가진 것은 범상이라 부른다.이들은 모두 서안의 한 종류이다.

 

경  상

우너래 사찰에서 불경을 읽을 때 쓰는 것인데 뒤에 사대부집 서안으로 사용되었다.

 

  

고  비

조선시대 편지를 두루 말 이로 된 화선지에 썼기 때문에 고비는 이를 보관하기 위한 용도로 쓰였다.두루 말이는 옆에서 일어놓도록 되어있어 전면은 막혀있는데 이전면에 음각,투각등의 정교한 장식과 대나무를 이용해 시원스러운 장식성을 보여주는 것도 있다

 

필통,필가

필통은 붓을 보관하는 통.필가는 붓을 바닥에 걸쳐놓을 때 쓰는 도구 이다.

 

 

서 견 대

서책을 받치는 대로서 송판이 경사진 것과 부챗살 같이 폈다 접었다 하는 것이 있다.

 

함,통,궤

함은 도장함,문서함,서함,관모함 등.통은 탕 건통.망건통 화살통등,궤는 의류궤가 대표적으로 종이제가 많은 것이 특징 이다.

평  상

휴식용의 침대와 같은 상,살평상과 널평상이 있다.

 

 

연  상

연상은 가구로서는 규모가 작기 때문에 섬세한 장식을 한 것이 많아 선비의 멋과 취미를 많이 담아 놓았던 것으로 보인다.대체적으로 벼루를 보관하는 용도로 쓰였다.

 

 

바둑판- 바둑판은 방형의 통나무와 괴목판으로 만들었다.

출처 : diy 가구,인테리어소품,리폼,목공
글쓴이 : 서해로지는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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